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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ay Rock

입대 전 마지막을 여는 이야기


 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. 친구 녀석의 전화였다. 그 녀석이 새벽부터 나를 깨워댄 건 보통의 이맘 때 남자들이 걱정하는 흔한 군대 얘기였다. 목소리에서 살짝 취기가 돌았지만 그 녀석은 무척이나 진지하려고 애를 쓰는듯 했다. 잠결이었던 나는 단잠을 포기한채 그 녀석의 말에 최대한 집중하려 했다. 두서없이 시작한 그 녀석의 얘기가 슬슬 지루해질 때 쯤 피로감이 내 몸을 다시 휘감았다. 대답만 해주다간 전화가 끊날 요량이 안 보여 통화의 주도권을 내가 뺏어버렸다. 너의 말도 이해하고 너의 맘도 이해하지만 그거 때문에 너무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흔한 위로법이었다.

  이십대의 초입을 들어서부터 남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군대 얘기로 탈바꿈한다. "잘 지냈어?" 보다는 "군대 언제 가?" 정도의 인사치레를 하며 서로의 동질감을 찾으려 한다. 앞서 전화통화를 한 친구 녀석과도 마찬가지였다.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는 언제부터 군대 얘기로 시작해 군대 얘기로 끝을 맺곤 했다. 적어도 그 곳에서 2년이란 시간의 심미안을 찾으려하는 나름의 노력이었을지 모른다. 사실 그 녀석은 거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얘깃거리(군 관련)들을 지나치게 부풀려 말하기도 하고, 늘상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. 그런 그 녀석의 너스레에 없던 근심까지 생길 지경이었으니까 나중에는 그 녀석이 군대에 군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치가 떨렸다. 흡사 내게 추파를 던지는듯 했다.

  며칠 후, 내게도 입대날짜가 나오고 그 녀석은 전화 한 통과 함께 훈련소로 들어가버렸다. 그 녀석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몹시나 침착하고 담담했던 걸로 기억한다. 훈련소에 들어가기도 채전에 이십년 째 안 든 철이 그 때되서 반짝 들은걸까…….친구의 설레발이라고만 믿고 싶었던 상황들이 내게도 기어코 찾아왔다. 밤만 되면 같은 아파트의 사는 친구를 불러내 흡사 기자회견인 마냥 심경을 토로했다. 그 때가 되서야 입대한 친구가 그렇게도 허투루 얘기한 게 조금은 이해가 됐었다. 일종의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싶었다.

  이제 닷새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이유는 딱히 없다. 단지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 지금의 붕뜬 마음을 조금은 추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에서부터 글을 쓰게 되었다. 다행히도 조금은 도움이 된 듯하다. 몇 달 전부터 그렇게 걱정하던 학업 고민, 진로 고민도 이제는 조금이나마 무뎌졌다. 막상 입대 하루 전날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가족이나 친구들 걱정 안 끼치고 몸 성히 갔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. 그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.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도 그동안 건강하고 잘 지냈으면 하는 소소하면서도 가장 정직한 바람도 말이다. 

   2년 뒤 제대를 하고 이 글을 우연찮게 찾아 봤을 때는 또 다른 느낌이 마주하길 기대하면서, 항상 고맙고 미안해! =)